지난 화요일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2년간 사랑을 주고 받던 맥북에어에게 카라멜 마끼아또를 먹였다.

그래서 하루 일과를 부랴부랴 끝내고 신도림에 있는 애플 수리점에 가서 44,000원을 내고 점검을 받았다. 사용자 과실이기 때문에 근 20만원 주고 산 애플케어는 효력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것과, 키보드, 팬 등을 가는데 약 40만원의 비용이 발생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더 큰 문제는, 마더보드 쪽에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100만원 가량의 추가적인 교체 비용을 지불해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 나는 40만원짜리 도박을 할 것인지, 포기하고 새 노트북을 살 것인지의 기로에 놓인 것이다.

그래서 바로 다른 대안들을 탐색하기 시작했고:

결론적으로는 약 200만원을 들여 ThinkPad X1 Carbon을 구매하기로 했다. 어떤 사람들은 ‘업글’이라고 표현했지만, 내 사용 패턴에서는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내가 맥북을 약 150만원에 샀다는 점을 감안해봤을 때는, 오히려 비슷한 사양을 50만원이나 더 주고 사는 꼴이었다. (이건 레노보에서 그린 재밌는 인포그래픽 ㅋㅋ 근데 역시 다르지 않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씽크패드로 넘어간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노트북 없이 사는 것은 절대 옵션이 아니었다.
  2. 나는 이미 기존 맥북에어의 해상도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맥북에어 레티나가 나오면 기변을 고려하고 있었다.
  3. 맥북에어 mid-2011, mid-2012를 다시 사는 것은 100-15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 것이었는데, 중고든 신품이든 그 돈을 들여서 구매하는 것은 결코 매력적이지 않았다.
  4. 어차피 Mac OS를 쓰지 못할거라면, 우분투를 써보면서 다른 플랫폼을 경험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5. 일단 씽크패드를 사용하다가 정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 년 후 3분기 쯤 맥북에어 레티나가 출시될 때 다시 옮겨 탈 수 있다.

그래서 어제 (2013년 3월 7일) 오후 9시 경 씽크패드를 주문했다. 그리고 오늘 오후 5시 경 퀵으로 받았다. (그래야 주말에 어느 정도 configuration을 해놓고 다음 주부터 당장 노트북으로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아래에 기존 맥북에어 유저로서 ThinkPad X1 Carbon이 어떻게 느껴졌는지를 정리해보았다.

  • 첫 느낌:
    • 정말 기계다. 냄새도 기계, 포장도 기계. 플래그쉽 카메라 같은 촉감은 호평을 받고 있음.
  • 첫 눈에 보인 장점:
    • 빨콩이 편해 보임.
    • 시원시원한 와이드 디스플레이.
  • 첫 눈에 보인 단점:
    • 제품을 받자마자 켜지지 않음: 완전 방전이 되어 있던걸까? 맥북은 충전하지 않아도 받자마자 켜졌는데.
    • 어댑터가 크고 못생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이야기.
    • 액정을 감싸는 투박한 테두리: 맥북의 유선형 디자인보다는 확실히 아쉬운 부분.
    • 불안정한 힌지(hinge): 노트북 커버를 열면 눈에 띄게 덜렁거림. 이건 뽑기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역시나 맥북의 정밀한 느낌에는 매우 뒤쳐진다..
    • 시끄러운 키보드: ThinkPad의 키감이 좋다는 얘기가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에어의 가벼운 키감이 더 좋았음. 익숙함의 차이일지도.
    • 액정 주변부에 접착제가 묻어 있는 등, 마감이 좋지 않음.

결론적으로, 지금은 마음에 든다고 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첫 인상은 별로여도 만나면 만날수록 좋은 사람이 있듯, 씽크패드도 그럴 수 있을거라는 생각도 든다. 많은 사람들이 호평을 할 때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

내 씽크패드의 이름은 ‘crayon’이다. 크레용의 모든 색을 겹쳐 칠하면 내 씽크패드와 같은 검은색이 되니까. 맥북에어의 이름이 ‘Tinkerbell’이었으니, 나는 비로소 Neverland를 벗어날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좋은 이름을 지어준 룸메에게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