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요일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2년간 사랑을 주고 받던 맥북에어에게 카라멜 마끼아또를 먹였다.
그래서 하루 일과를 부랴부랴 끝내고 신도림에 있는 애플 수리점에 가서 44,000원을 내고 점검을 받았다. 사용자 과실이기 때문에 근 20만원 주고 산 애플케어는 효력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것과, 키보드, 팬 등을 가는데 약 40만원의 비용이 발생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더 큰 문제는, 마더보드 쪽에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100만원 가량의 추가적인 교체 비용을 지불해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 나는 40만원짜리 도박을 할 것인지, 포기하고 새 노트북을 살 것인지의 기로에 놓인 것이다.
그래서 바로 다른 대안들을 탐색하기 시작했고:
맥북에어에게 카라멜마끼아또를 먹인 이후: 크롬북이든 뭐든 쓰다가 3분기에 출시되는 맥에어 레티나로 갈지, 아예 씽크패드 X1 카본터치로 넘어갈까 고민중. 유브갓메일에서 톰행크스가 씽크패드 쓰고 맥라이언이 맥을 쓰던 이미지가 좋아서 맥에 미련이...ㅎㅎ
— Lucy Park (@echojuliett) March 7, 2013
결론적으로는 약 200만원을 들여 ThinkPad X1 Carbon을 구매하기로 했다. 어떤 사람들은 ‘업글’이라고 표현했지만, 내 사용 패턴에서는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내가 맥북을 약 150만원에 샀다는 점을 감안해봤을 때는, 오히려 비슷한 사양을 50만원이나 더 주고 사는 꼴이었다. (이건 레노보에서 그린 재밌는 인포그래픽 ㅋㅋ 근데 역시 다르지 않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씽크패드로 넘어간 이유는 다음과 같다.
- 노트북 없이 사는 것은 절대 옵션이 아니었다.
- 나는 이미 기존 맥북에어의 해상도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맥북에어 레티나가 나오면 기변을 고려하고 있었다.
- 맥북에어 mid-2011, mid-2012를 다시 사는 것은 100-15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 것이었는데, 중고든 신품이든 그 돈을 들여서 구매하는 것은 결코 매력적이지 않았다.
- 어차피 Mac OS를 쓰지 못할거라면, 우분투를 써보면서 다른 플랫폼을 경험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 일단 씽크패드를 사용하다가 정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 년 후 3분기 쯤 맥북에어 레티나가 출시될 때 다시 옮겨 탈 수 있다.
그래서 어제 (2013년 3월 7일) 오후 9시 경 씽크패드를 주문했다. 그리고 오늘 오후 5시 경 퀵으로 받았다. (그래야 주말에 어느 정도 configuration을 해놓고 다음 주부터 당장 노트북으로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아래에 기존 맥북에어 유저로서 ThinkPad X1 Carbon이 어떻게 느껴졌는지를 정리해보았다.
- 첫 느낌:
- 정말 기계다. 냄새도 기계, 포장도 기계. 플래그쉽 카메라 같은 촉감은 호평을 받고 있음.
- 첫 눈에 보인 장점:
- 빨콩이 편해 보임.
- 시원시원한 와이드 디스플레이.
- 첫 눈에 보인 단점:
- 제품을 받자마자 켜지지 않음: 완전 방전이 되어 있던걸까? 맥북은 충전하지 않아도 받자마자 켜졌는데.
- 어댑터가 크고 못생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이야기.
- 액정을 감싸는 투박한 테두리: 맥북의 유선형 디자인보다는 확실히 아쉬운 부분.
- 불안정한 힌지(hinge): 노트북 커버를 열면 눈에 띄게 덜렁거림. 이건 뽑기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역시나 맥북의 정밀한 느낌에는 매우 뒤쳐진다..
- 시끄러운 키보드: ThinkPad의 키감이 좋다는 얘기가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에어의 가벼운 키감이 더 좋았음. 익숙함의 차이일지도.
- 액정 주변부에 접착제가 묻어 있는 등, 마감이 좋지 않음.
결론적으로, 지금은 마음에 쏙 든다고 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첫 인상은 별로여도 만나면 만날수록 좋은 사람이 있듯, 씽크패드도 그럴 수 있을거라는 생각도 든다. 많은 사람들이 호평을 할 때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
내 씽크패드의 이름은 ‘crayon’이다. 크레용의 모든 색을 겹쳐 칠하면 내 씽크패드와 같은 검은색이 되니까. 맥북에어의 이름이 ‘Tinkerbell’이었으니, 나는 비로소 Neverland를 벗어날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좋은 이름을 지어준 룸메에게 감사!)